23시간 머무르며 尹대통령 통화·국회의장 회담·JSA 방문 등 소화
인·태전략 강조 속 중국·대만 언급 안해…對中관계 악화 부담 의식한 듯
입국 당시 국내 의전 인력 없어 정치권서 '의전 홀대' 공방도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한주홍 기자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박 2일간의 방한에서 한미 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 기간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와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 등을 통해 평화를 위한 강력한 대북 억지력의 필요성에 한국 측과 공감대를 이뤘다.

지난달 31일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펠로시 의장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대만을 거쳐 3일 오후 9시 26분께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했다.

펠로시 의장은 서울 시내의 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뒤 4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했다.

회담에는 국민의힘 권성동·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배석했다.

미국 대표단으로는 그레고리 믹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 마크 타카노 하원 재향군인위원장, 수전 델베네·라자 크리슈나무르티 연방하원의원, 한국계인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 등이 동석했다.

펠로시 의장과 김 의장은 오전 11시 55분부터 1시간 10여분간 이어진 회담에서 양국의 전략적 동맹 강화와 한미 정부의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김 의장은 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한미 동맹이 군사 안보, 경제, 기술 동맹으로 확대되는 데 주목하는 한편, 포괄적 글로벌 동맹으로의 발전을 의회 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한 방안을 펠로시 의장과 협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북핵 문제도 협의했다"라며 "북한이 위협 수위를 높이는 엄중한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 확장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실질적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이루는 양국의 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공동언론발표 후 국회 사랑재에서 오후 2시 30분까지 김 의장과 오찬을 한 뒤 윤석열 대통령과 한미 동맹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40분간 통화했다.

통화는 애초 지방행을 염두에 뒀던 윤 대통령의 휴가와 펠로시 의장의 방한 일정이 겹쳐 면담 일정이 잡혀 있지 않던 상황에서 회담에 준하는 수준으로 진행됐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통화에서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협력, 글로벌 경제위기 속 공급망 대응 등 여러 경제안보 현안이 논의됐다.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에 헌신해온 것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한미 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발전을 위해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펠로시 의장은 역내 평화와 안전을 위한 핵심축으로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한미동맹 발전을 위해 미 의회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펠로시 의장은 특히 한미동맹을 두고 "수십년에 걸쳐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온 평화와 번영의 약속을 반드시 비키고 가꿔나갈 의무가 있다"라며 "한미 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질서를 가꿔나가자"고 제안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서방 진영이 중국을 견제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 펠로시 의장이 방한에 앞서 대만을 방문해 미중 갈등이 격화한 만큼 방한 기간 해당 사안이 이슈화할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김 의장과의 회담이나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실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언급한 것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파트너십에 동참하는 데 촉구해 달라는 우회적 메시지로 해석됐으나 이미 긴장도가 높아진 중국을 추가로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은 이후 JSA를 방문했다. 이는 한미 동맹의 강력한 의지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됐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 대사관에서 미 해병대를 만난 사실을 트위터로 알리기도 했다.





한편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의전 홀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논란은 펠로시 의장이 3일 입국할 당시 국내에서 의전 인력이 아무도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며 확산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 국회가 이토록 (펠로시 의장을) 냉대해도 괜찮은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국회는 펠로시 의장에 대한 의전이 없었던 것은 미국 측과 사전에 조율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국회 관계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국제적으로 예민한 문제였던 탓에 한국 도착시간의 보안에 신경을 쓰게 됐고 의전도 생략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대통령실 최영범 홍보수석 역시 브리핑에서 "미국 측이 영접을 사양해 국회 의전팀이 공항 영접까지는 하지 않은 것으로 조율이 된 상황으로 안다"고 했다.

주한미국대사관 측도 "대사관은 미 의회 대표단 방한 시 대한민국 국회와 긴밀히 협력해 의전, 기획 관련 사항을 조율한다"며 통상 사전조율이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설명과 별개로 여야는 이번 사안에 문제를 제기하며 상대 진영에 그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당은 이번 의전이 행정부가 아닌 국회의 잘못이라며 민주당 출신 김 의장과 야당에 화살을 돌렸다.

반면 민주당은 한국 측 의전 관계자가 공항에 나가지 않아 펠로시 의장이 불쾌해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아마추어 외교가 빚은 참사"라고 주장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오후 펠로시 의장이 출국한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는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환송을 나갔다.

이 사무총장은 펠로시 의장에게 오찬 장면이 담긴 사진 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펠로시 의장은 오후 8시 15분께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아시아 순방의 마지막 행선지인 일본으로 떠났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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