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단체 간담회서 언급…"열린 자세로 공론화 거칠 것"
대통령실도 입장 선회…"취학연령 하향은 하나의 대안"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최근 벌어진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논란과 관련해 국민적 합의가 없다면 정책을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초등 입학연령을 이르면 2025학년도부터 만 5세로 한살 낮추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뒤 교육계와 정치권, 학부모들 사이에서 전방위적으로 반발이 확산하자 나흘만에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학부모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날 행사가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를 위한 간담회'라고 밝혔지만, 학부모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논란이 된 초등 5세 입학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박 부총리는 "선진국 수준의 우리 초등학교를 활용해서 아이들에게 교육과 돌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안전한 성장을 도모하고 부모 부담을 경감시켜 보자는 것이 목표"라며 "(학제개편은) 목표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결정해 나갈 예정"이라며 "열린 자세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 단체 대표들은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공론화는 찬반이 비등할 때 필요한 것"이라며 "지금처럼 모두 황당해 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이 사안에 대해 왜 굳이 공론화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박은경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는 "이 발표 하나에 당장 사교육계가 (사교육) 선전을 하는데 어떻게 감히 공교육(강화)을 입에 담느냐"며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맞다. (박 부총리에 대한) 사퇴 운동까지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성남 참교육을위한 전국 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학폭·왕따 문제 등 학교 현장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학제개편 문제를 얹으면 학교가 폭발할 것"이라며 "(학제개편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부총리는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까지 국가가 품어야 하고, 더 나은 걸 주고 싶다는 선한 의지였는데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학부모들께 충분히 (목표가) 전달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게 될까 고민하다가 대안으로 나온 것인데 대안은 목표를 위해 바뀔 수 있다"며 "정책은 전환될 수도, 변경될 수도, 유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책 철회 입장을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자 박 부총리는 "아무리 해도 학부모 우려를 가라앉힐 수 없다면 정부가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여론 수렴과 공론화를 강조하며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일파만파 커지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취학연령 하향은 하나의 수단적 대안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안상훈 사회수석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취학연령 하향은 그 자체로 목표는 아니다"라며 "교육부가 신속하게 공론화를 추진하고 국회에서 초당적인 논의가 가능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달라는 게 대통령 지시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안 수석은 교육부가 기존 계획을 백지화할 수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아무리 좋은 정책의 내용이라도 국민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1살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부총리는 언론 사전브리핑에서 2024년 시범실시를 거쳐 2025년 시행을 검토한다고 밝혀 정책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발표 이후 학부모와 교원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게 일었고, 시민단체들은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를 결성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학부모 반발이 크고 사회적 파급효과가 막대한 사안인 만큼 정부가 사실상 정책을 철회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려면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야당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렵고, 2024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도 여론을 거슬러 정책을 강행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흘러나온다.

cindy@yna.co.kr

저작권자 © 한국뉴스종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